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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기차 충전기 설치는 사용자가 알아서… 한심한 관계부처

  • 이영섭 gian55@naver.com
  • 등록 2018.06.01 06:48:43

공동주택 전기차 충전기 설치, 하늘에 별따기

제주시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A씨는 최근 전기차를 구입하며 겪은 불쾌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정말 큰 마음을 먹고 전기차를 구입했는데 가장 중요한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는 게 하늘에 별따기 수준이었다"며, "주변에 지인이 전기차를 산다고 하면 말리고 싶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A씨를 힘들게 한 것은 공동주택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기 위해 필수적인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사무소의 동의를 얻는 일이었다.


서귀포시 한 빌라에 거주중인 B씨는 올해 전기차를 구매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전기차를 예약한 후 충전기 설치를 위해 입주자대표회의에 직접 참석까지 했으나 "금방 떠날 세입자를 위해 충전기를 설치해줄 수는 없다", "주차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기차 사용자만을 위한 충전공간을 보장해줄 수는 없다"는 반대의견에 부딪힌 것이다.


심지어 한 동대표는 "전기차가 충전하면 주차공간이 부족해진다"라거나, "충전기 사용으로 전자파가 나오면 아이들에게 유해하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B씨는 전했다.


전기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홈 충전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B씨는 충전기 설치가 막히자 아예 전기차 구입을 포기하고 경유차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미세먼지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전기차 보급확산 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나, 정작 현장에서는 이런 사소한 문제점들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 전기차를 위해 비워놓은 아파트 내 충전기, 전기차 사용자 모두가 꿈꾸는 환경이다



지원되는 충전기는 개인용, 부분개방, 완전개방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

환경부가 진행하고 있는 전기차 완속 충전기 민간보급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해당 년도 전기차를 구매한 사람에게 한해 개인이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비공용 완속 충전기 설치가 지원된다.


지원되는 금액은 고정형 충전기의 경우 150만원, 이동형 충전기는 충전기와 전용콘센트 설치비 90만원이 지원된다.


▲ 한 기업 주차장에 설치된 개인용 비공용 충전기


전기차 구매여부와 상관 없이 일정규모(제주 지역의 경우 주차면 20면 이상) 이상 공동주택, 혹은 시설의 입주민, 혹은 관리사무소에서 신청할 수 있는 완전개방, 부분개방 충전기도 있다.


해당 시설, 공동주택의 입주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완전개방 충전기의 경우 주차면 20면당 1기씩 설치가 가능하며 지원금액은 최초 1기 400만원, 2기부터 5기까지는 각 350만원이 지원된다.


▲ 제주 지역 한 복지회관에 설치된 완전개방 완속충전기.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해당 시설이나 공동주택의 입주민들끼리 공유할 수 있는 부분개방 충전기 역시 주차면 20면당 1기씩 설치가 지원되며, 지원금액은 최초 1기 320만원, 2기부터 5기까지는 각 280만원이 지원되고 있다.


▲ 서귀포시 한 아파트에 설치된 부분공용 충전기 앞에 내연기관 차가 주차되어 있다



충전기 설치 위해 전기차 구매자만 발 동동,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을 설득하는 일...

환경부가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전기차 충전기 지원 정책은 위와 같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아파트와 빌라, 오피스텔, 다가구주택 등 전국민의 대부분, 제주 도민의 50%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공동주택에서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려면 입주자대표회의, 관리사무소 등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어 있는 공동주택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 동의서를 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전체 입주민 중 2/3 이상의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 제주 도민의 50%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공동주택(사진은 기사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 책임과 의무가 누구에게 있는가? 바로 전기차 구매자, 정확히는 충전기 설치를 희망하는 국민에게 있다.


정부의 친환경차 보급 정책에 동참하기 위해, 미세먼지 해소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 위해, 혹은 연료비를 절감하기 위해, 다양한 이유로 큰 맘 먹고 전기차를 구입한 국민들이 차량운행에 필수적인 충전기를 설치하기 위해 입주자대표회의, 관리소장, 다른 입주민들을 만나서 직접 설득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절망적인 사실은 전국적으로 전기차 보급률이 1% 미만인 현 상황에서 극소수의 전기차 사용자를 위해 주차장 등 공유면적에 충전기를 설치해주고 주차면까지 보장해줄 입주자대표나 관리소장은 없다는 점이다.


전기차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혹은 있어도 자신들과 상관 없는 일이므로 반대부터 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전기차 구매자가 직접 발로 뛰어야 하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 전기차 라이프의 현실이다.



수년간 계속된 문제점 지적에도 개선된 점은 없어, 사실상 손놓은 정부

환경부에서는 충전기 지원 접수와 설치, 운영 등 모든 과정을 충전사업자 8곳에 일임하고 있다.


충전기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이들 사업자와 모든 것을 풀어가야 한다.


대부분의 충전사업자들은 공동주택 충전기 설치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 회사 영업담당자 등을 통해 지원하겠다는 안내문구를 내걸고 있다.


충전기 설치를 위한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사무소에 대한 설득작업에 대해서도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같은 주택에 살고 있는 입주민이 설득하지 못하는 일을 외부 인력이 와서 설득한다고 해결될 리가 만무하다.


심지어 대부분의 충전사업자들은 그 규모가 영세해 각 지자체별로 전기공사를 담당하는 하청업체를 두고 운영중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설득작업이 이루어질리가 만무하다.


이런 문제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산자부 등 관련 부처에서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전용 주차공간이 필요 없는 이동형 충전기에 대해 입주자대표회의가 아닌 관리사무소의 동의만으로도 설치가 가능하도록 한 것뿐이다.


▲ 규정상 관리소장의 동의만으로 설치할 수 있는 이동형 충전기.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이 역시 현장을 전혀 모른 상황에서 나온, 탁상공론에 불과한 대책이다.


고용인에 불과한 관리소장이 과연 입주자대표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허락할 수 있을까?


최근 천신만고 끝에 전기차 이동형 충전기를 설치한 C씨의 경험담을 참고해볼만 하다.


"평소 관리소장님과 친분이 있어 쉽게 동의서를 받을 수 있을 줄 알았죠.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더군요"


"전기차 충전기 설치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발을 빼더군요. 현 규정상 관리사무소의 동의만 받으면 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요지부동이었어요. 책임질 일을 만들기 싫다는 거죠"


"입주자대표 한분 한분을 만나 간신히 동의를 받는데 성공한 후에야 간신히 한숨을 돌렸지만 고비가 또 하나 남아있더군요. 저희 아파트 같은 소규모 아파트는 자체적으로 관리소장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전문업체에 모든 걸 위탁하고 그곳에서 관리소장을 파견하는 식인데, 그 관리업체가 또 반대를 하더군요"


입주자대표회의 동의를 받은 일에 관리업체가 반대를 한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일이다.


"설치를 반대하는 관리업체 관계자를 만나보니 반대 이유가 기가 차더군요. 저희 아파트 외 관리중인 몇몇 아파트에서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했는데 주차 등의 문제로 민원이 계속 발생하더라는 겁니다. 설치해봐야 민원만 생기니 아예 설치를 불허하겠다는 거죠"


"하도 기가 막혀서 화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충전기 설치를 위해 또 한 번 꾹 참고 우리 아파트 일은 입주민이 알아서 하겠다는 식으로 강하게 밀어부쳐 간신히 동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설치에 성공하긴 했지만 두 번 하라면 절대 못할 일입니다. 수명이 몇년은 줄어든 거 같네요"


정부에서 내놓은 '이동형 충전기에 한해 관리소장의 동의만으로 설치가 가능하다'는 규정이 사실상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케이스다.



정상적인 전기차 운행을 위해서 홈충전기는 필수, 탁상공론 그만두고 현장을 살펴야 

상황이 이런데도 관련 부처에서는 공동주택 등 사유재산에 대한 충전기 시설물 설치에 적극 개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기존 공동주택에는 해당이 없는, 신축 공동주택에 대한 최소한의 충전기 설치 의무화 정도가 관련 부처가 내놓은 대책의 전부다.


환경부와 국토부, 산자부에서는 공동주택 충전기 설치가 지지부진하자 공공기관과 고속도로 휴게소, 대형마트 등에 개방형 급속 충전기를 설치하는 것으로 이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 개방형 급속충전기는 그저 비상용일뿐. 홈 충전기 확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그대로 두고 행해지는 임시방편에 불과한 일이다.


실제 전기차를 운행중인 사용자들이 공통적으로 조언하는 부분은 홈충전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이다.


개방형 급속충전기가 아무리 늘어난다 해도 이는 장거리 운행 시, 혹은 급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 사용하는 비상용이며, 안정적인 전기차 운행을 위해서는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편안하게 충전을 걸어놓을 수 있는 홈충전기가 필수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전기차 제조사와 사용자, 관련 학계에서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고압배터리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급속이 아닌 완속충전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가이드를 내놓으며 홈 충전기에 대한 선호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차 구매자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 등과 맞서야 하는 이 촌극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하는 풍경이다.


전기차 구매 희망자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전기차 구매시 가장 우려되는 부분으로 '충전의 불편함'이 꼽히고 있다는 사실을 관계 부처는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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