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1 (일)

  • 맑음서울 17.1℃
  • 구름많음제주 20.9℃
  • 맑음고산 20.6℃
  • 맑음성산 18.7℃
  • 맑음서귀포 19.8℃
기상청 제공

라이프


가족간 갈등, 창문필터 DIY, 실내관광지에 몰린 인파… 미세먼지가 바꿔놓은 제주의 풍경

  • 이영섭 gian55@naver.com
  • 등록 2017.05.08 15:40:23

중국에 대한 강력한 항의와 상호협력이 절실해

제주시에 거주하는 주부A 씨에게 이번 황금연휴는 악몽 그 자체였다. 5일부터 7일까지 이어진 사흘 간의 연휴 기간 동안 제주로 단체가족여행을 온 시댁식구들과 미세먼지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시댁식구들이 육지에서 제주로 내려온 연휴 기간 내내 제주를 비롯한 전국의 미세먼지 농도는 200~300㎍/㎥을 오르내리며 매우 나쁨 수준을 기록했다. 중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황사가 서풍을 타고 계속해서 한반도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 연휴 기간 내내 서울과 제주 등을 뒤덮고 있는 중국발 미세먼지

 

이에 A씨는 가족여행 일정을 변경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어렵게 시간을 맞춘 시댁식구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설상가상 제주를 방문한 시댁식구들은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인 만큼 미세먼지가 아무리 심해도 여행을 강행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자녀들에게 황사 마스크를 씌우고 여행지를 따라다니며 “유별나다”, “미세먼지도 계속 들이마시다보면 면역력이 생긴다”는 타박까지 꾹꾹 참아내던 A씨는 결국 그날 저녁 바비큐파티 자리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황사로 인해 제주지역 미세먼지 수치가 300㎍/㎥을 넘어선 와중에 펜션 야외 테라스에서 바비큐 파티를 강행하던 시댁식구들에게 꾹꾹 참아왔던 울분을 폭발시키고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귀가해버린 것이다.


▲ 미세먼지에 뒤덮혀있는 중국 자금성의 모습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오염이 고부갈등, 세대갈등의 새로운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모들은 대기오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높은 연령층에서는 미세먼지에 대해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젊은 사람들의 반응에 유난을 떤다고 못마땅해하는 경우도 많다.

 

비단 고부갈등이나 세대갈등뿐만이 아니다. 각 가정 내에서도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미세먼지가 심각한 날 자녀의 통학 문제, 외부 활동 문제 등을 놓고 부부 간 갈등이 발생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해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역시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이다. 이런 엄마들 5만여명이 주축이 되어 운영중인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개인용 측정기를 구입해 실내 공기질을 체크하고, 각 지역별 대기오염 현황을 공유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공기청정기 필터, 혹은 자동차 필터를 이용한 창문필터 DIY 열풍이 불고 있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아 창문을 열지 못하는 날이라 해도 실내 라돈 수치나 음식냄새 등을 제거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환기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해당 커뮤니티 회원들은 창문에 부착해 사용할 수 있는 DIY 강제 환기 시스템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미세먼지가 만들어낸 웃을 수만은 없는 새로운 풍경이다.


▲ 차량용 필터를 이용한 DIY 창문필터 설치 후 개인용 측정기로 공기질을 측정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 미세먼지 카페)


▲ 선풍기와 차량용 필터를 이용해 제작된 가정용 강제환기 DIY 시스템 (출처 : 네이버 미세먼지 카페)

 

한편 중국발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오염은 제주를 포함한 국내 관광의 이용행태까지 바꿔놓고 있다.

 

이번 5월 연휴 기간, 특히 미세먼지 수치가 높았던 5일부터 7일까지 연휴 기간 동안 야외 관광지를 찾은 관광객들의 숫자가 급감한 반면, 실내 관광지나 복합쇼핑몰 등으로 인파가 몰린 것이다.

 

제주 여행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오랜만에 찾은 제주 여행 기간 내내 호텔과 실내관광지만 전전했다’는 경험담과 ‘숙소에 공기청정기가 없어 곤란했다’는 불평, 그리고 ‘청정제주도 옛말이다. 다음부터는 대기오염이 없는 해외로 가야겠다’는 푸념이 주를 이루고 있다.


▲ 도내 실내 수족관이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 와중에 일부 국내 전문가들과 연구기관, 사회단체 등은 국내 미세먼지의 원인 상당수가 국내에서 발생하는 거라며 애써 현실을 부정하거나 물타기를 하는 행태를 보여 국민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미세먼지로 인해 국민들이 이처럼 힘들어하는 것은 평상시 한반도 대기권에 머무는 오염물질의 발생원이 어디냐는 것이 아니라, 이번 연휴 기간처럼 WHO 권고기준의 10배를 넘나드는 오염물질이 발생해 외부활동은 커녕 창문조차 마음대로 열 수 없는 날, 과연 그 고농도 미세먼지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의견과 공중파 방송에 모든 것을 의존해야 하던 시기는 지났다. 이제 일반 사람들도 마음만 먹으면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이 제공하는 전세계 대기흐름과 오염물질의 이동에 대한 분석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중국에서 발생한 미세먼지가 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유입되고 있다 (출처 : 일본 인디드도쿄)


▲ 전세계 오염물질 발생 및 이동분포도에서도 최악의 공기질을 보이고 있는 중국대륙. 이웃을 잘못 둔 죄로 전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


지난 3월말부터 제주 지역을 오염시키고 있는 고농도 미세먼지는 명백히 중국에서 발생하여 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건너왔다. 그리고 이 오염물질로 인해 우리 국민들, 제주 도민들은 건강악화는 물론 가족간 갈등과 세대 갈등까지 겪어내고 있다.


이에 제주도 원희룡 지사 역시 8일 오전 열린 주간정책회의에서 미세먼지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강조했다. 원 지사는 "전국이 미세먼지로 덮여있다고 해서 제주마저 그렇다면 제주의 브랜드는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라며, "장벽을 세워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제주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강구해서 실행한다면 오히려 제주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 특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당부했다.


▲ 8일 주간정책회의에서 미세먼지 대책마련을 강조하고 있는 원희룡 지사 


과연 내일 있을 제19대 대선을 통해 당선되는 새로운 대통령이 중국의 오염물질 배출에 대해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모든 국민들이 주목하고 있다.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추천 비추천
추천
0명
0%
비추천
0명
0%

총 0명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