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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봄을 빼앗아간 중국발 미세먼지

  • 이영섭 기자 gian55@naver.com
  • 등록 2017.04.25 00:22:10

“힘들게 올라왔는데 아무 것도 안보여. 제주도 미세먼지 너무 심하다”
“저기 저 뿌연 게 전부 미세먼지네. 아, 미세먼지 피해 왔는데 이게 뭐야”
“그러게 내가 세부로 가자고 했잖아. 국내에는 미세먼지 피해갈 곳이 없다니까”


지난 23일 일요일, 화창한 주말을 맞아 다랑쉬오름 정상에 오른 관광객들의 대화내용이다.


한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미세먼지를 피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다랑쉬 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절망 그 자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봄 날씨 속에 시원한 조망을 기대하고 다랑쉬 오름에 오른 관광객과 도민들은 하나 같이 탄식을 뱉어내고 있었다.


저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는 아예 미세먼지에 가려 형태만 희미하게 보일 정도고, 근방에 위치한 다른 오름들 역시 뿌연 미세먼지에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 구름 한점 없는 화창한 날씨건만 뿌연 미세먼지로 사방이 뒤덮여있다


▲ 흐린 날에도 조망이 뚜렷한 동부권 일대의 풍경, 불과 2년 전의 모습이다


지난 3월 말경부터 제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미세먼지가 한달 내내 계속되고 있다.


환경부가 운영하는 에어코리아와 민간업체 케이웨더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동기간 동안 제주의 미세먼지 수치는 내륙과 별 다른 차이가 없는 ‘나쁨’ 수준에 가까운 ‘보통’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느슨한 국내 기준 탓에 ‘보통’ 수준을 보일 뿐 WHO 기준에 따르면 한달 내내 약간 나쁨에서 나쁨 수준을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유채꽃과 벚꽃으로 대표되는 제주의 봄이 미세먼지로 파괴되고 있다. 육지와 다를 바 없는, 가끔은 더 심한 제주의 미세먼지로 인해 관광객들이 아예 해외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각 가정에서 여행지 선택에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는 ‘엄마’들을 중심으로 미세먼지에 대한 정보공유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 ‘엄마’들이 활동하는 각종 인터넷 ‘맘카페’에서는 미세먼지에서 탈출할 수 있는 세부와 괌, 발리 등 해외 여행지에 대한 추천이 계속되고 있는 반면, 제주에 대해서는 ‘육지와 별 다를 바 없는 미세먼지로 인해 봄에는 가급적 방문하지 않을 것을 권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 한 인터넷 카페에서 제주도 미세먼지에 대한 정보를 공유중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되어 제주 관광의 또 다른 한 축을 만들어가고 있던 ‘한달살이’ 역시 해외로 그 목적지가 변경되고 있다. 특히 최근 배우들이 모여 조용한 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내용의 TV프로그램의 배경인 발리는 제주를 대신할 새로운 한달살이 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맘카페’ 등에서 공유된 내용에 따르면 발리나 세부 등의 한달살이 비용은 제주에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항공권료가 비싼 대신 식료품 등이 저렴하고 숙소 렌트 비용은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들 해외 관광지에 비해 제주가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던 것이 국내라는 안정감이었으나, 미세먼지가 극심해지며 아이들의 건강에 민감한 ‘엄마’들의 마음을 돌려놓고 말았다. 미세먼지 때문에 야외활동을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떠나는 여행지는 미세먼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원칙이 이들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민들의 건강에도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육지에 비해 미세먼지가 덜했던 탓에 미세먼지 수치가 매우나쁨을 넘어 300㎍/㎥에 달했던 지난 주 후반에도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에서는 정상적인 야외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던 탓에 대응체계가 완벽히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보에 민감하지 않은 장년•노년층의 경우 뿌옇게 뒤덮인 미세먼지를 안개로 착각하고 아예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 제주지역 맘들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미세먼지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도정은 제주를 배경으로 방송중인 각종 TV오락프로그램을 통해 ‘전기차’ 홍보에 나섰다. 가수와 개그맨, 모델 등이 모여 제주도민의 민원을 해결해준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에서는 아예 원희룡 도지사가 직접 출연해 전기차를 추천하기도 했고, 한 공중파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들이 ‘친환경 여행’이라는 컨셉으로 전기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한 청취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청정제주를 외치며 전기차를 타고 떠난 제주 여행길 곳곳에 미세먼지 가득한 모습이 그대로 방송되었기 때문이다.


▲ 청정제주를 위해 연예인들에게 전기차를 추천하고 있는 원희룡 지사


▲ 하지만 방송 내내 화면에 비친 뿌연 미세먼지는 청정제주라는 말을 무색케할 정도로 절망적이다


이처럼 청정제주를 홍보하려는 모든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중국발 미세먼지는 치명적이다. 아무리 홍보를 한다 해도 실제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SNS를 통해 제주의 미세먼지 상황이 대중에게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를 방문할 비용으로 접근 가능한 해외여행지가 여럿 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를 찾는 국내 관광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국 베이징, 인도 델리 등과 함께 세계 최악의 공기질이 서울 및 수도권을 뒤덮고 있는 상황이 계속될수록 미세먼지에 오염되고 있는 제주는 점점 여행지로서의 매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해외 관광객 역시 마찬가지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해외 관광객들에게 제주를 비롯한 대한민국은 비싼 물가에 공기질까지 최악인 관광지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 누가 찾을 것인가.


▲ 제주를 대신할 한달살이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는 발리.


이제는 국가와 도정이 나설 차례다. 우리가 중국에 요구할 것은 별 도움도 안 되는 저가 패키지 관광객 구걸이 아니라, 환경파괴에 대한 엄중한 경고와 대응책 촉구다. 자체적으로 배출하는 환경오염요인이 적은 제주에 이토록 미세먼지가 극심한 원인을 분석하는 한편, 그 주 배출국인 중국에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자체적인 저감 노력도 계속되어야 한다. 제주시와 서귀포시 주요 지점에 55개의 공기질 관측기를 운영중인 민간업체 케이웨더의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심지와 화북지역의 미세먼지 수치는 중산간과 서귀포에 비해 항상 10~ 15㎍/㎥ 이상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제주를 뒤덮은 상황에서 대기흐름이 정체되는 날이면 자체적으로 배출한 오염물질이 더해져 오염수치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체적으로 배출하는 환경오염물질을 줄이기 위한 화력발전소 감축과 태양열, LNG 등 환경오염이 덜한 발전시설로의 대체, 내연기간차량 감축과 전기차 보급 등도 계속되어야 한다.


▲ 도정이 추진하고 있는 태양광 융합형 전기차 충전소


▲ 친환경 태양광 발전시설


▲ 화력발전소에 비해 조금이나마 환경오염이 덜한 LNG발전시설


해마다 벚꽃과 유채꽃 개화를 기다리며 봄을 기다리던 우리가 이제는 봄철 북서풍에 실려 날아올 중국발 미세먼지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처지가 되었다. 과연 이 중국발 발암물질에 빼앗긴 제주의 봄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지, 그 여부에 도민의 건강과 제주 관광산업의 미래가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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