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골(대정읍 보성리)에서 오래전부터 혼자 살아오신 어르신이다. 고령으로, 질환으로 외부 출입을 못하시는 어르신이 안쓰럽다고 동네 지인이 도움을 청했다. 년초 방문해서 상담했던 가구이다. 말씀을 이어서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특출한(?) 재주를 가지신 분으로 기억했던 어르신이다. 개방적 질문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을 준수했다가는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상담시간이 되어 버리고 만다. 다행스럽게도 그 재주를 남한테 양도하지 않으셨다. 유쾌한 시간이 도래했다. 여자삼춘이 말씀하셨다. “요자기 옆집 할망이 곧는 얘기를 들어신디 요양보살이랜 허는 사름이 왕 청소도 해주곡, 밥도 촐려주곡, 병원도 데려다 준댄 핸게. 나도 그런거 이시민 해줘” 어르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방문에 동행한 주무관의 얼굴을 바라보니 사뭇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세월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내는 어르신의 주름만큼이나 심한 제주도 여자삼춘의 사투리와 ‘요양보살’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그 이유이리라. 문맥상 ‘요양보살’은 ‘요양보호사’ 임이 틀림이 없다고 확신해 버렸다. 장기요양서비스(재가) 중 ‘방문요양’서비스를 받든지 지역사회통합돌봄사업 중 하나인 ‘토탈케어서비스’를 받으시는 어르신을 두고 하신 말씀인
“내 몸의 일부분이 사라지는 기분이야” 리처드 글렛저 감독이 연출하고 줄리언 무어가 출연한 영화 ‘Still Alice’의 대사 중 하나이다. 이 영화는 성공한 언어학자이며, 한 가정에서 아내이자 엄마로서 남 부러울 것 없는 행복을 누리던 앨리스가 어느 날 갑자기 초로기 치매 진단을 받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 장면이다. 그녀와 막내딸 리디아는 늦가을 을씨년스런 바람 속에서 강변에 한 의자에 앉아 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 초점 잃은 쾡해진 눈으로 딸과는 다른 방향을 응시한다. 막내딸이 그녀의 등을 어루만진다. 그렇게 웃기를 좋아하고 다정다감하던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고 허무와 냉정만이 가득해 보인다. 막내딸이 어떤 글을 읽어주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엄마” 그녀가 작은 미소를 머금은다. “괜찮았어요? 방금 읽은 거요”. 그녀가 살포시 고개를 끄덕인다. “별로였어요?” “무엇에 대한 얘기였나요” 그러자 그녀가 짧게, 힘겹게 답한다. “사랑.. 사랑” 우리 사회의 고령화 진행 속도와 더불어 치매환자의 증가 속도가 무서울 정도이다. 2010년 47만 명 수준이던 치매환자가 2021년에는 이미 91만여 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