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일부분이 사라지는 기분이야”
리처드 글렛저 감독이 연출하고 줄리언 무어가 출연한 영화 ‘Still Alice’의 대사 중 하나이다.
이 영화는 성공한 언어학자이며, 한 가정에서 아내이자 엄마로서 남 부러울 것 없는 행복을 누리던 앨리스가 어느 날 갑자기 초로기 치매 진단을 받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 장면이다.
그녀와 막내딸 리디아는 늦가을 을씨년스런 바람 속에서 강변에 한 의자에 앉아 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 초점 잃은 쾡해진 눈으로 딸과는 다른 방향을 응시한다.
막내딸이 그녀의 등을 어루만진다. 그렇게 웃기를 좋아하고 다정다감하던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고 허무와 냉정만이 가득해 보인다. 막내딸이 어떤 글을 읽어주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엄마” 그녀가 작은 미소를 머금은다. “괜찮았어요? 방금 읽은 거요”. 그녀가 살포시 고개를 끄덕인다. “별로였어요?” “무엇에 대한 얘기였나요” 그러자 그녀가 짧게, 힘겹게 답한다. “사랑.. 사랑”
우리 사회의 고령화 진행 속도와 더불어 치매환자의 증가 속도가 무서울 정도이다. 2010년 47만 명 수준이던 치매환자가 2021년에는 이미 91만여 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하여 왔다. 제주도도 1만명을 훌쩍 뛰어 넘었다. 고령인구가 증가하고 백세에 대한 경이로움이 사라진 현대사회에는 노인성 질환자의 증가라는 현실이 버티고 있다.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으로 분류되는 치매환자가 있는 가정은 감당하기 버거운 고통 속에 놓인다. 이는 해당 환자만이 아니라 모든 가족 구성원이 함께 부담을 갖고 고통을 나누어야 하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영화 ‘Still Alice’는 맞닥뜨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듯 하다. 치매환자를 단순히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에 보내 ‘우리’와 단절시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거동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우리와 더불어 같이 소통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마침내 막내딸 리디아가 그녀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 같다. 그녀의 기억이 아니라 그녀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을 일깨우고 그것을 통해 소통하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가 잃은 것은 무엇이며 그녀가 아직 잃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본능적인 진단이 이루어진 듯 하다.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평생 모아온 소중한 기억’이었지만 그 기억 대신에 다정다감한 소통을 할 수 있는 감정이 남아 있었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느낄 수 있고 그 느낌을 잔존의 도구로 소통할 수만 있다면 여전히 앨리스(Still Alice) 이지 않을까.
제주교통복지신문, TW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