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통복지신문 김지홍 기자] 제76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 4·3평화공원 위령제단·추념광장에서 유족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이번 추념식은 제주4·3의 정신을 일깨우고, 평화의 씨가 날아 곳곳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해져 슬픈 역사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불어라 4·3의 봄바람, 날아라 평화의 씨’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4·3 생존희생자 및 유족, 제주도민, 정부 및 정당 관계자 등 1만 여명이 참석했으며, 주요 내빈의 절반 이상이 고령 유족과 생존희생자로 추념식의 뜻을 더했다.
정부 대표로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고기동 행안부 차관, 이상훈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 송두환 국가인원위원회 등이 참석했다.
또한 재외제주도민회 총연합회를 비롯한 서울·인천·부산·광주·경남 등 지역도민회도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참석했으며, 전국 17개 시도지사협의회 교육감도 제주4·3의 기억과 정신을 함께 공유했다.
올해 76주년 추념식에서는 경과보고, 유족 사연 등 행사 전반에 미신고 희생자 추모, 4·3의 명예회복과 실질적 피해 및 가족관계 회복,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원 등의 의미를 담아냈다.
추념식은 식전행사와 본행사로 진행됐으며, 오전 8시 40분 종교의례와 추념시 낭송, 제주도립 제주예술단과 시립합창단의 합동공연 등 식전행사가 진행됐다.
제주여자고등학교 김지원 학생은 4·3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지만 조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아픔을 공감하며 쓴 추념시를 낭송하며 전 세대가 4·3을 함께 기억하고 공감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오전 10시 정각에는 1분간 제주도 전역에 묵념 사이렌이 울려 4·3영령을 함께 추념했다.
추념식 본행사는 묵념, 애국가 제창, 인사말, 제주4·3 경과보고, 추념사, 유족사연, 추모공연 순으로 이뤄졌으며, 사회는 한승훈, 이각경 아나운서가 맡았다.
애국가 제창은 베르디 국제성악콩쿠르 1위 등 많은 무대에서 활약한 바리톤 김동규 씨와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문화예술대상 팝페라 부분 수상자인 소프라노 한아름 씨가 선창했으며, 애국가 제창 시에는 4·3유적지 영상과 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염원 영상이 송출됐다.
이어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과 오영훈 제주도지사의 인사말에 이어졌다.
김창범 회장은 “4·3의 실체적 진실을 향한 처절한 투쟁으로 4·3특별법이 개정돼 희생자에 대한 4·3보상금 지급, 직권재심 청구로 인한 명예회복, 뒤틀린 가족관계도 폭넓게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4·3과 같은 비극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는 평화·인권공동체로 나아가는 따뜻한 국가를 간구한다”고 전했다.
오영훈 지사는 “이제 4·3은 낡은 이념의 시대의 종결을 알리고 사람 중심의 빛나는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며 “제주도정은 4·3의 세계적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승하고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피력했다.
아울러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동백꽃이 치유와 사랑의 꽃망울을 활짝 틔우듯, 긴 어둠을 이겨낸 제주와 4·3이 지구촌 평화 번영을 위한 씨앗으로 뿌려져 다음 세대에 정의로운 미래를 안길 것”이라며 “제주가 열어나가는 사람 중심의 빛나는 미래를 4·3 영령님들과 함께 지켜봐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제주4·3 이후 역사를 되짚은 경과보고 영상을 통해 질곡의 세월을 지나 진상 규명,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원 등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노력의 성과를 공유하고, 특히 올해 3월 이름 없는 희생자들을 위한 위패봉안실 내 무명신위의 뜻을 기렸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추념사를 통해 “4·3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라며 “정부는 4·3사건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여 화합과 통합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2025년까지 추가 진상조사 마무리,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운영, 국제평화문화센터 건립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도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섯 살에 부모를 모두 잃은 김옥자 어르신 사연을 배우 고두심 씨가 소개하고, 손녀 한은빈 학생의 편지 낭독에 이어 인공지능(AI) 기술로 김옥자 어르신의 아버지를 사진과 영상으로 복원해 딸과 재회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은빈 학생은 “홀로 남겨진 딸자식이 돼 어두운 그늘 속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할머니가 세상 누구보다 애처로왔다”며 “무엇보다 할머니의 가장 큰 슬픔은 이제는 아버지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 망각”이라고 할머니의 사연을 전했다.
이어 유족 증언을 바탕으로 수천장의 인물 사진을 참고해 인공지능(AI)기술로 복원하는 과정을 거쳐 김옥자 어르신의 아버지 고(故) 김병주 씨의 생전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복원해 이날 딸과 다시 만났다.
김옥자 어르신은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다섯 살이라는 나이만 잊어버리지 않아요. 이 사진이 아버지 얼굴 닮았나요. 아버지 얼굴이면 닮았다고 말 좀 해주세요”라며 깊은 그리움을 표했다.
딥페이스 기술을 활용한 영상으로 재현한 고 김병주 씨는 “옥자야 오래 기다렸지. 이리 와. 우리 딸 얼마나 컸는지 아빠가 한번 안아보게”라며 다정하게 말했다.
가수 인순이 씨는 ‘아버지’를 열창하며 유족을 위로하는 무대를 선사했으며, 고두심 씨는 “시렸던 겨울을 이겨낸 따뜻한 4·3의 봄바람이 우리 모두의 아픔을 보듬고, 희망의 씨앗이 널리 펼쳐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추모공연으로 성악가 김동규 씨와 한아름 씨, 도란도란 합창단의 ‘바람의 노래’로 미래세대와 함께하는 화해와 상생의 분위기 속에 이날 추념식이 마무리됐다.
그동안 제주도민은 한마음으로 제주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왔다.
현재 4·3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 및 실질적 피해보상, 희생자와 사실상 자녀 간 가족관계 회복 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며, 유족들의 간절한 바람이던 4·3특별법 일부개정에 따른 혼인신고·입양신고 특례도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특히 지난 3월에는 ‘영가천도 추모법회’와 ‘4·3희생자 무명신위 위패조형물 제막식’을 개최해 도민과 함께 이름을 알 수 없는 4·3사건 미신고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다.
또한 지난해 11월 4·3의 진상 규명 과정과 화해·상생의 노력을 담은 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신청서를 제출하는 등 4·3기록물이 전 세계인의 기록으로 영구히 남을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