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가 청렴을 화두로 술렁일 때마다 나는 그때가 떠오른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반장 선거에 미끄러졌다며 축 처진 어깨로 울먹이며 돌아왔다. 표 차이는 딱 한 표, 나는 궁금했다. “너는 누구 적었는데?” “친구 000 적었는데” “너 반장 하고픈거 아니였어? 그럼 너 이름을 적어야지” “어떻게 내 이름을 적어. 그건 좀 그래” “다음부턴 꼭 너 이름 적어. 다들 그렇게 한대.” 반장선거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낸다는 엄마들의 말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딸아이를 채근했다. 하지만 다음 해에도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적어내지 못한 딸아인 또다시 한 표 차이로 미끄러져 돌아왔다. “엄마. 내 이름 쓰고 싶었는데 쓸 수 없었어. 기분이 이상해서......” 아이는 고개를 떨구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순간 멍함과 화끈거림, 그리고 뜨거운 뭉클함이 동시에 나를 찾았다. 나약하게만 보였던 어린 딸아인 청렴 속에 강건하게 서 있었고 나는 청렴 밖으로 나동그라져 있었다. “잘했네 우리 딸. 친구 이름 적는 게 진정한 경쟁이지. 엄마가 힘들게 해서 미안해.” 부끄러움과 함께 그날, 나는 청렴을 알게 되었다. 요즘도 공직사회의 화두는 단연 청렴이다. 해마다 청렴을 지
공직자의 사명, 아니 숙명은‘청렴’과‘친절’이 아닐까! 해마다 셀 수 없는 평가와 순위 공개, 시책들이 쏟아지지만 시민들 앞에 우리는 늘 부족하고 송구스럽다. 공직을 시작하던 1990년대도‘친절’은 공직사회의 화두였다. 친절 분위기 조성을 위한 친절사례 발표회에서 동사무소 민원업무를 담당하던 나는 수상이라는 결과를 얻었고 친절공무원이란 타이틀이라도 거머쥔 듯 어깨도 으쓱 올라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쓰리아웃제’란 시책에 난 그만 쪼그라들고 말았다. 어느 늦은 오후 방문한 민원인은 민원서류 신청 자격이 없는데도 발급해주지 않는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민원탁자를 주먹으로 마구 내려쳤다. 공직 경력이 짧았던 나는 콩콩 뛰는 가슴으로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있었다. 도청 민원실 신문고함에 불친절 공무원으로 제출되고 레드카드란걸 받은 건 불과 며칠 뒤였다. 레드카드를 세 번 받으면 공직사회에서 아웃되어 ‘쓰리아웃제’라는 선배님의 설명은 사회초년생 나를 공포에 떨게 하였고 도대체 납득되지 않는 불친절함은 오랫동안 억울함으로 기억되었다. 시간은 흐르고 날마다 다짐하는 친절은 뿌듯함과 보람으로 때론 어찌해볼 수 없는 낭패감으로 돌아왔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