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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화 “한산”과 우선순위

김경미 서귀포시 공보실

1592년 임오년, 430여년전 풍전등화의 조선의 운명을 되바꾼 충무공 이순신의 한산대첩을 그린 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은 이순신 3부작 시리즈의 2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영화 ‘명량’은 8년전에 개봉되어 1700만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고 이번 한산도 개봉5일만에 2백만을 넘어서고 있다.
 
한산대첩에서 이순신은, 견내량에서 싸우지 않고 한산도로 유인하여 싸웠다. 일본 패잔병이 좁은 견내량을 헤엄쳐 통영이나 거제도로 도망가 백성들에게 해를 끼칠까 염려하여, 넓은바다로 끌여들여 수장시키고 혹여 살아가더라도 무인도인 한산도나 화도에서 굶어죽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순신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 「당포파왜병장」에 보면, ‘왜선을 격침시키거나 불태울 때마다 혹시나 그 왜선에 조선인 포로들이 있는지를 제대로 확인하라. 조선인 포로 한 명을 구해내면, 적의 수급 하나를 베는 것보다 더 큰 공이니라‘ 라는 명령을 수군에게 내렸다

 

이외에도 그의 장계에는 노비, 어부, 격군, 토병 등 천민들의 이름 석자와 작은 전공까지 세세하게 적었으며 그들의 처자식에게는 구제를 위한 특전을 베풀어 줄 것을 임금에게 청원한 내용들을 볼 수 있다.

 

반면 그는 싸우는 7년 동안 123번 군율로 부하를 처벌했고 그중 28번은 목을 베어서 사형에 처했다.(최두환, 『충무공 이순신 전집』 5권, 우석, 1999)
 
이순신의 백성에 대한 사랑은 지극함과 동시에 책임과 군율을 어긴 이들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엄격하고 관용은 없었다. 이순신의 이 극단의 기록들은 오직 나라와 그 백성을 지키기 위한 길에 맞닿아 있으며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주교통복지신문, TW News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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