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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폭낭 공거리

김현국 서귀포시 도서관운영사무소장

어릴 적 마을에서 주민들이 모여 여러 가지 의사결정을 하는 공공장소는 마을회관이었다.

 

마을회관은 여러 가지 마을 대소사를 다루던 곳이었고, 평상시 만남의 장소는 골목 어귀마다 있었던 ‘폭낭 공거리’였다. 폭낭은 팽나무이고, 공거리는 폭낭 주변을 콘크리트로 둘러싼 쉼터이다. 선풍기가 없었던 시절 초석(돗자리)과 배게를 들고 나와 거기서 은하수와 별똥별을 보면서 잠을 자다가 새벽 첫 버스에 잠이 깨곤 하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TV도 마을에 하나 정도 있던 때라 공거리가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 수단이었고, 여성들의 빨래터와 같이 소문의 중심지이기 했다.

 

공거리에서 어른들이나 동네 선배가 들려주는 전설과 옛날 이야기들은 수많은 상상력을 자극해 주기도 했지만, 소설 ‘앵무새 죽이기’처럼 많은 선입견과 편견을 생산하기도 하던 장소였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에 존재하던 아고라와 상당히 유사한 장소였다. 아고라는 처음에는 물건을 교환하는 시장의 역할에서 출발해 나중에는 토론의 장으로 변모하였는데 소크라테스와 같은 많은 그리스 논객들이 여기서 활동했던 장소다. 디지털 문명의 발전으로 가상공간으로 확장되었고, 지금은 폐쇄된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운영되었던 아고라는 그리스의 아고라를 본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들이 오간 곳이었다.

 

논쟁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강한 원동력이지만 현재 상황은 찬과 반, 나와 너만이 보이고 우리라는 단어는 실종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라는 숲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숲을 떠나서 나와 너라는 나무 한 그루로만 살 수 있을까? 각자의 가지가 서로에겐 해를 가리는 그늘이 되기도 하지만 더 큰 숲이 되어 서로 바람을 막아주는 숲의 일부분이도 하다.

 

그늘진 가지에도 하루 중 얼마간은 햇빛이 들어온다. 지금은 그늘진 나무 한 가지로 인해 수많은 이로움을 놓치지 않는 현명함을 가져야 할 때이다.

 

 

제주교통복지신문, TW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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