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칼럼] 징검다리 인연으로 제주에 도착한, 점자 도서 이야기
아마 중2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임시 체험’했던 시간이. 눈을 검은 천으로 감싸고 감각에만 의존해 걸었던 5분은 다섯시간처럼 길었고, 우여곡절 끝에 천을 풀고 본 길들은 상상처럼 거칠지 않았다. 나무와 흙바닥, 돌… 그다지 낯설지 않은 눈앞의 상황은 오히려 나를 당황하게 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이구나. 시력마저 좋아 ‘소머즈’로 불리던 아이는 그 찰나의 감각이 이후로도 내내 잊히지 않았다.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되면 읽을 수 없는 사람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말풍선이 마음 한 켠에서 툭 떨어졌다. 시간이 오래 지나 나는 캐나다로 이민을 다녀왔고 책을 3권 쓴 작가가 됐다. 그 와중에도 촉각 도서나 점자 도서에 관심을 내내 가지고 있었지만, 별다른 접점은 없었다. 상담하고 글을 쓰면서 항상 동경해 왔던 이근후 선생님께 멘토가 돼 달라고 요청해 좋은 관계가 됐다. 그 와중에 한국에 와서 선생님을 뵙고 대화하는 중에 정말 놀랄 일을 만났다. 아니, 놀랄 책을 만났다. 종로에 있는 선생님의 <가족 아카데미아> 사무실에 국어 대사전 사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