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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무원이 해야 할 일

원용주 서귀포시 표선면

“따르릉”. 사무실 전화가 울린다. 어떤 할아버지다. 나는 자세히 듣는다. 듣고보니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고 알아보고 공부한다면 해결될테지만 사실 내 사무분장표에는 없는 일이다.

 

사무실에서 가장 난감한 순간은 어려운 일을 할때가 아니다. 내 업무인지 여부가 애매한 일을 맞닥뜨린 순간이다. 사무분장표에 쓰여진 업무만이 나의 업무일까? 그 표에 문자로 나타나지 않은 업무는 나의 업무가 아닌걸까? 경계는 어디인걸까? 이런 갈등의 상황 속에서 나의 양심은 그것을 하라고 외치지만, 나의 머리는 하지 말라고 한다. 매번 그렇다. 보통 양심이 이기긴 하지만 가끔 머리가 이길 때도 있다. 

 

핑계 댈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무시하거나 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던 것들, 너무 바쁘다고, 이건 내 업무가 아니라고 나를 납득시켰던 것들. 사실은 내가 해야했다. 전화 너머의 민원인은 나에게 전화할 만큼 아쉬운 사람들이다.

 

절차를 알아보고자 하거나 그러한 정보에 가까이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주변에서 모든 것이 알아서 진행되는 사람들은 나의 사무실에 전화하지 않는다.

 

규정을 들먹이며 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한적도 있다. 조금만 더 해결해보고자 노력하고 조금만 더 친절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매번 쌓인다. 이런 일을 되돌아볼 때 마음이 너무나도 불편하다. 어쩌면 그 민원인의 하루를, 그 사람의 일 전부를 내가 망쳤을 수도 있다.

 

나도 그 사람의 입장이 안될거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매번 나는 이런 갈등속에서 업무시간을 보내고 그 사람을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찌 됐든 모두에게 완벽한 만족을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비단 나 혼자만의 갈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공무원 조직 내 모든 직원들이 저런 본인 내부의 전쟁 속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청렴이란 단어를 쪼개고 정의내리고 그러한 사례를 찾으며 공부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업무시간 전체를 가만히 바라보면 우리는 청렴이라는 가치가 개입되어야만 하는 상황을 매번 맞이하고 있다. 양심이 외치는 그 소리가 바로 청렴하라는 외침이다. 공무원으로서의 양심 그 자체다.

 

그 외침은 불편하다. 나태한 나에게 그 일을 하라고 지시한다. 그렇다고 돈을 더 받나, 내가 이걸 하며 얻는 이득이 있나, 이런 잡생각도 든다. 하지만 결국 나에게 이걸 하게 하는 힘은 나는 공무원이라는 지위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몇 년 전 임용 면접에서 면접관이 나에게 외치듯이 한 그 한마디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꼭 지역주민들을 위한 세무공무원이 되십시오!”. 이 말의 무게가 1년, 1년 이 자리에 앉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짊어질 수 없을만큼 무거워진다.

 

 

제주교통복지신문, TW News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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