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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부의 전기차 2개월 출고제한, 소비자들만 큰 피해

  • 이영섭 gian55@naver.com
  • 등록 2018.03.15 10:57:59

전기차 보조금 신청 후 2개월 내 출고 등록이 이루어져야 보조금을 지급하는 환경부의 업무지침이 소비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 업무를 총괄하는 환경부에서는 올해 '보조금 신청 후 2개월 내 출고등록 시 보조금 지급'과 '차량 성능에 따른 보조금 차등 지급'이라는 두 가지 카드를 새로 꺼내들었다.


지난해 12월 성산 휘닉스제주에서 환경부 주최로 열린 전기자동차 민간보급 우수사례 발표회와 익월 간담회 등을 통해 확정된 이 두 가지 규정의 당초 목표는 전기차 제조사였다.


▲ 지난해 12월 제주에서 열린 환경부 정책 발표회


환경부에서는 지난 2017년까지 전기차 민간보급을 실시하며 전기차 제조사들이 관련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고, 생산물량을 늘리는 데 있어서도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 두 가지 규정을 신설한 것이다.


이에 따라 차종에 상관없이 일괄 1,400만원이 지급되던 환경부 보조금이 각 차종에 따라 최저 700만원에서 최대 1,200만원으로 책정됐다.


보조금의 최대치가 줄어듬은 물론 배터리 성능 대비 주행거리와 겨울철 주행거리 등이 미흡한 차종은 사실상 판매가 불가능할 정도로 보조금이 줄어든 것이다.


보조금 신청 후 2개월 내 출고 및 등록 규정은 지난해 볼트EV 출시 과정에서 발생한 소비자와 지자체의 혼란을 막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지난해 3월 제주에서 열린 전기차엑스포를 통해 첫선을 보인 볼트EV는 완충 시 최대 380km까지 주행이 가능한 2세대 전기차로, 많은 전기차 예비 구매자들이 볼트를 구입하기 위해 전기차 구입을 미루며 기다렸으나, 차량 생산 및 국내 배정 문제로 결국 지난해 국내에서 정식 출고된 볼트는 수백대에 불과했다.


이에 일부 지자체에서는 볼트만을 기다리던 전기차 예비 구매자들이 보조금 신청을 늦추거나 아예 취소하는 등 혼선이 잇따랐고, 환경부에서는 주행거리 300km 이상 신차가 대거 출시되는 2018년에는 그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보고 관련 규정을 도입해 차량 출고를 독려하고 나선 것이다.


▲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고작 수백대만 판매된 볼트EV


하지만 이런 신설 규정에도 대기업인 전기차 제조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올해 1월과 2월 진행된 볼트EV와 코나EV, 니로EV 등 신차 사전예약을 통해 접수된 물량은 볼트가 5,700대, 코나가 12,000대, 니로가 5,000대로 총 22,700대에 달한다.


환경부에서 2018년 보급하기로 한 전기차가 총 20,000대인데 이미 신차종에 대한 사전계약만으로 그 물량을 초과한 상황인 것이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관심이 온통 2세대 전기차에 집중되면서 전기차 보급 속도 역시 당초 예상보다 크게 떨어지고 있다.


올해 2,254대를 보급하기로 한 서울시의 경우 공고 후 한 달 간 241명이 보조금을 신청했으나 실제 출고로 이어져 보조금이 지급된 건수는 6대뿐이다.


1,929대 보급을 계획하고 있는 대구시의 경우에도 199명이 신청해 43대가 등록되는데 그쳤다.


3,912대를 보급하는 제주에서는 한달 간 고작 141명이 신청했고, 그나마 출고 등록으로 이어진 건 단 한도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보조금 지급규모가 현저히 작은 지자체의 소비자들이 2세대 전기차를 포기하고 1세대 전기차를 신청하며 보급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처럼 전기차 보급 규모가 큰 제주와 서울, 대구 등의 보급속도가 떨어지고 있으나 사실상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 올해 5월 정식 출시가 예정된 코나EV


특히 300km 이상 신차가 대거 출시되는 올해, 전기차 민간보급이 절정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던 환경부는 크게 당황하는 눈치다.


올해 내놓은 두 가지 카드로 제조사를 압박, 전기차 민간보급 사업의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당초 취지는 이미 퇴색됐으며, 전기차 제조사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각 사의 마케팅 전략에 따라 출고시기를 조절하고 있다.


2개월 내 출고 등록이라는 핸디캡을 제조사들이 오히려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소비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보조금 지급규모가 적은 지자체들을 타겟으로 1세대 전기차의 재고를 모두 처리한 후 2세대 전기차를 출시해 제주와 서울, 대구 등의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이 각 제조사들의 전략이라고 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전기차 민간보급 사업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는 환경부와 지자체, 소비자 간의 줄다리기에서 우위를 점하려던 환경부의 생각이 처음부터 오산이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장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고 적극적인 대처가 가능한 제조사들과 달리, 변화에 느리고 경직될 수 밖에 없는 정부부처로서 갖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 신차 출시 시기가 하반기로 집중됨에 따라 올상반기 가장 많은 판매량을 올리고 있는 쏘울EV


한편 올해 3,912대를 보급하는 제주도의 경우 보급속도 저하로 인해 받는 피해가 타 지자체에 비해 적은 편이나, 자칫 올해 5월과 7월로 예정된 코나EV, 니로EV의 출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보조금 신청시기를 조율하던 도민들이 아예 전기차 구매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도민은 "수천만원짜리 자동차를 구입하면서 시승은 커녕, 심지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계약을 하고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게 참담하다"며, "수많은 문제점이 드러난 아파트 선분양제도처럼 전기차 구매의 주도권이 제조사로 넘어가며 그 취지가 변질되고 있다"고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결국 주도권은 다시 출고시기를 마음대로 조율할 수 있는 제조사로 넘어갔다.


환경부와 지자체 뿐만 아니라 수천만원이라는 큰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들조차 '을'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현 전기차 보급정책에 대해 다시 한 번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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