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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연재] ① 이제 제주에서도 버스 출퇴근이 가능해졌다

  • 이영섭 gian55@naver.com
  • 등록 2017.08.30 10:50:15


체계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였던 제주의 대중교통 시스템

육지도 마찬가지지만 지난 여름 제주에는 거의 비가 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애월읍 등 서부지역 일부 중산간 마을에서는 아직도 제한급수가 이루어지고 있을 정도로 제주도민들은 여름 내내 무덥고 가문 날씨와 싸워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를 포함한 제주도민들을 힘들게 하던 가뭄과 더위가 서서히 물러갈 즈음 제주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근 30년만에 대중교통체계가 완전히 개편된 것이다. 


사실 그동안 제주에서 대중교통, 버스를 이용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버스 배차 간격이 한 시간에 가까운 읍면 지역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제주 시내나 서귀포 시내에서도 버스 운행경로와 배차간격, 환승 시스템이 그야말로 엉망이라, 자차로 10분이면 갈 거리를 버스로는 30분 이상 가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30년간 제주의 대중교통체계란 것이 정확한 설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도민들의 요청, 혹은 필요성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변경을 하다 보니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에 가까웠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일 지 모른다.


이처럼 대중교통체계의 부재는 결국 인구 67만의 지역에 등록차량만 47만대, 세대당 등록 대수로 치면 전국 평균 1.04대를 훌쩍 넘는 1.36대를 기록, 전국 지자체 중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는 결과를 나았다.



출퇴근 시간 제주도심지의 도로상황. 서울의 교통혼잡에 못지 않다


제주에서는 한 가족 중 아버지 차와 어머니 차, 두 대는 기본이고. 여기에 대학교 다니는 자녀 차, 밭일 다니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차까지, 한 가정에 차량 3대 이상이 등록된 집이 허다하다.


특히 육지에서 자기 차량 보유율이 낮은 학생층과 노인층도 저마다 차를 갖고 다니기 때문에 이들이 도로에 몰리는 출퇴근 시간이면 제주 도심지 곳곳이 서울 못지 않은 혼잡도를 연출할 수 밖에 없다.


제주 특유의 주차 문화도 자동차 등록대수 증가에 한 몫을 한다.


일단 외곽 지역뿐 아니라, 도심지에서도 대부분의 공영주차장이 무료다. 거기에 이면도로와 주택가에 빈 공간만 있으면 무조건 주차를 하는 것이 관행이다.


이를 서울 등지에서처럼 단속을 할 수도 없는 것이 차를 갖고 다니지 않으면 도심지로 출퇴근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중교통체계가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의 불편함이 자기 차량 이용률을 높이고, 이는 다시 불법주차로 이어져 도심지 혼잡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 그동안 제주교통의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그동안 차 없이 제주 여행을 즐기려는 관광객들, 혹은 운전할 사람 없이 엄마와 자녀들만 제주로 온 한달살이 가족 등은 비싼 택시를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서부터 관광지까지, 혹은 숙소까지 이어지는 제대로 된 대중교통 시스템의 부재는 관광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쳐왔던 것이다.


제주 도심지 소방안전본부 앞 도로, 이면 주차된 차량들로 빈 공간이 없다


1년 만에 다시 버스를 타고 출근길에 나서다

개편 결정과 설계용역, 그리고 기획과 실행까지 수년의 시간 동안 제주도 내에서도 찬반 양론이 팽팽했던 제주 대중교통체계가 지난 26일 완전히 개편됐다.


기존에 있던 버스 노선과 번호 체계, 운행 및 환승 시스템, 요금체계 등을 모두 폐지하고 아예 판을 새로 짠 셈이니 개편보다는 창조에 가까운 일이었던 셈이다.



이번에 개편된 제주도의 버스노선체계. 기존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사실 이번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기획하고 시행한 도내외 전문기관에서는 기존 타 지자체의 선례를 참고 하되, 제주만의 교통과 주차 문화, 그리고 시외 지역과 시내 지역의 간격이 좁아 특정 짓기 어려운 제주만의 패턴을 검토하고 개편안을 만드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주도에서 이번 개편작업의 책임자라 할 수 있는 교통항공국장 자리에 관광과 교통 양대 분야의 경험이 많은 오정훈 국장을 임명했다는 것이다.


사실 관광도시인 제주도에서는 관광과 교통 두 가지 분야가 서로 충돌하는 일이 잦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시행된 공항로 일대 가로수 이식 작업이 대표적인 예다.


제주공항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공항로에 심어진 8,000여 그루의 가로수는 그동안 제주를 상징하는 관광 포인트 중 하나로 여겨져 긍정적 영향을 끼쳐왔으나, 교통 측면에서 보면 1개 차선을 낭비함에 따른 교통체증 및 가로수 구간이 끝나는 지점에서의 접촉사고 발생 등 악영향을 가져오기도 했다.



공항로 일대의 가로수 이식작업 현장


이럴 때 관광과 교통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 하는 일은 제주의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제주도 교통항공국이 주축이 되고 제주연구원 등 도내외 전문기관들이 총력을 기울인 대중교통개편이 시행되고 첫 번째 맞은 월요일, 근 10년만에 버스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다.


사실 제주 이주 첫해 한 달 간은 서울에서의 버릇 그대로 버스를 이용해 시내를 오가곤 했다.


제주 시내 지리에 아직 낯설기도 하거니와 주차공간이 없으면 남의 집 앞에라도 무작정 차를 대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중교통 이용은 한 달도 못되어 중단되고 말았다. 


자차를 이용하면 10분~30분 내외면 갈 곳을 버스를 이용하면 걷는 시간 포함해 1시간씩 걸리기도 했고, 버스 정류장 시설도 엉망이라 날이 덥거나 추운 날이면 버스를 기다리며 생고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버스 출근을 시도하기로 마음먹은 첫 날, 집에서 목적지인 제주시청까지는 자차로 20분 내외면 이동이 가능한 곳인데, 기존에 제주시청까지 버스를 이용하려면 대략 20분 내외의 기다림과 30분 가량의 운행시간, 그리고 정류장까지의 도보 이동까지 대략 1시간은 투자해야 했다.


집 앞 버스정류장까지 걸어 가며 지도 앱으로 목적지까지의 직행 노선을 검색해보았다.


기존 2개뿐이던 직행 노선이 6개로 늘어났다. 각 배차 간격이 15~20분 정도지만 노선이 6개다 보니 10분 정도 기다리자 버스가 도착했다.



새로운 버스노선을 확인하기에 분주한 제주도민들


그리고 버스가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중간 중간 정류장에 들러야 하기에 이동 시간이 증가하긴 했지만 버스와 택시 등 특정 차량만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우선차로로 달리다 보니 순수 이동에 걸리는 시간은 자차를 이용할 때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결국 집에서 걸어 나와 10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 버스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도보 5분 이동, 총 35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제주에서 첫 시행된 대중교통우선차로로 버스가 운행하고 있다


자차를 이용할 때보다 대략 15분 정도가 더 소요됐지만 그대신 주차에 대한 스트레스와 부담에서 자유로워졌다. 무엇보다 운전대를 잡지 않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아, 이 정도면 그날 그날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버스와 자차를 선택해 이용하는 것이 가능할 듯하다.


한발 한발 천천히 걸을 때 비로서 느낄 수 있는 제주의 매력

사실 그동안 렌트를 할 수 없는 관광객들에게 제주는 그리 친절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중문관광단지 정도를 제외하면 공항에서 주요 관광지로 이동할 수 있는 버스노선이 그리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배차 간격도 1시간에 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개편에서 제주공항과 제주도 동서남북 관광지를 잇는 급행 버스 노선, 그리고 서부와 동부 지역에 신설된 관광지 순환 노선을 이용하면 렌터카 없는 제주 여행이 이제야 가능해졌다.


이는 운전미숙 등의 이유로 렌트가 어려운 학생들뿐만 아니라, 올레길 등 도보 여행을 즐기고 싶은 관광객들에게도 큰 매력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운전이 미숙한 상태에서 렌터카 이용은 위험하다


차로 휙휙 이동해서는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한발 한발 나아갈 때 조금씩 그 속살을 허용하는 것이 제주이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인구 유입, 제주 주거와 교통의 미래는?

최근 언론 매체에서는 치솟은 부동산 가격 등으로 제주 이주행렬이 급감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제주 인구 통계를 참고하면 진실을 파악하기 쉬운데,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2012년 첫 증가세로 돌아선 제주 인구는 2015년 중반 월 순증 인구(전입자 – 전출자) 2,000명까지 치솟았다가 그 증가세가 꺾이며 2016년 1월에는 월 순증 인구가 700명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이후 증가세가 다시 고개를 들더니 최근에는 다시 월 순증 인구가 1,800명대까지 증가한 상황이다. 인구 67만의 섬에 매년 1만명 이상씩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 증가는 필연적으로 교통체증과 부동산 가격 상승 등 주거환경의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여유로운 삶을 목표로 제주 이주를 준비하던 이들이 하나 둘 이주를 포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제주 인구 통계가 말해주듯 제주 이주행렬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송중인 ‘효리네 민박’에서 서울에서의 숨막히는 생활을 벗어나 제주생활의 여유를 맛보게 된 가수 아이유의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대변해준다.


“서울 집 생각이 신기하게도 하나도 안 나요. 여기 있으니 몸도 마음도 너무 편해지네요”



제주에서의 여유로운 삶에 익숙해지고 있는 가수 아이유(출처 : JTBC)


누군가는 제주 이주에 실패해 좌절의 아픔을 겪기도 하고, 누군가는 성공의 열매를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성공과 실패가 비단 제주로 이주했을 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일임을 깨닫는다면 제주로 이주를 시행하는 것이, 혹은 힘들더라도 서울에서의 치열한 도전을 즐기는 것이 그리 괴롭지만은 않으리라.


다만 그렇게 어렵게 제주 이주를 결정한 이들과 그동안 제주를 지켜온 도민들이 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교통과 주거환경에 대한 제주도정의 개선 노력이 계속 될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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